류송미 작가 묵향문학회 한국지회 사무국장
그늘진 들판에 나는 서있다. 그 허허로운 광야에서 나는 내 그림자를 찾으려 애써 두리번 거린다. 내 마음에 닿은 낯선 그늘, 발 닿는 곳마다 메마른 바람 한줄기가 애써 쌓아 올린 공든 탑을 흔들어주는 느낌이다.
문득 벽돌을 지고 제 발소리만 크게 내며 지나가는 영상이 떠오른다. 손에 든 횃불은 제 그림자마저 밝히지 못하고 오히려 앞선 자의 등을 어둡게 태울 때도 있다는 생각도 갈마든다. 기실 나의 살아온 삶 역시 그런 경우가 있지 않았나 돌이켜보게 된다.
나는 평생을 교육의 현장에서 보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이라 여기며 교실이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수많은 얼굴과 눈빛을 마주해 왔다. 겨울이 깊어지면 교실 창가로 스며드는 찬 기운이 먼저 걱정이 되었고 기침 소리 하나에도 마음이 쓰였다. 혹여 감기에 걸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는 없을지, 밤늦도록 게임에 빠져 성적이 하강선을 그리는 아이는 없는지, 담임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늘 분주했고 늘 마음이 급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사연을 가슴에 적어 넣으며 나는 하루를, 계절을, 해를 넘겼다.
그러는 사이, 정작 내 집 안의 작은 숨결을 놓치고 있었음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 감기에 걸려 밤새 끙끙 앓고 있을 때에도 나는 다음 날 수업 준비에 쫓겨 아이의 이마를 충분히 짚어주지 못한 적이 있었다. 약은 었먹는지, 물은 충분히 마셨는지, 그 모든 것이 뒤늦은 확인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 날이면 무던하던 남편의 입에서도 드물게 날 선 말이 튀어나오곤 했다.
“쯧쯧, 에미라는 게 대체 뭣 하는 짓이란 말이요? 남의 집 자식만 자식이고 제 자식은 자식이 아니란 말인겨…”
그 말은 짧았지만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쉽게 빠지지 않는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태양 아래 가장 성스러운 교원이라는 이름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서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분투했다. 돌이켜보면 그 성실함과 책임감은 분명 내 삶의 자부심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가까운 이를 향한 배려를 뒤로 미루게 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제는 어느새 아버지가 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미안함이 물결처럼 밀려온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한 마음들이 아직도 내 안에서 조용히 흔들린다.
등 뒤에서는 싸늘한 시선들이 꽃힌다. 삶의 갈림길마다 마주했던 오해와 판단, 말없이 지나간 상처들이 가시 돋친 풀처럼 무성하게 자라나 고개 숙인 들꽃들을 휘감아 드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 이미지들은 그늘진 내 마음의 들판을 안개처럼 덮어버린다.
한동안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흐릿해지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이른 아침, 풀잎 끝에 맺힌 작은 이슬이 햇살을 품고 반짝이는 순간을 본다. 아무리 깊은 그늘 속에서도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와 명랑한 햇살로 세상을 어루만지고 있음을 나는 더욱 확신하고 있다.
나는 그 햇살을 한 움큼 모아 손에 쥔다. 그리고 봄날의 둔덕 위로 성큼 올라선다. 내 심장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투명하고 향기로운 내일의 에너지에 시선의 연장선을 길게 뻗어본다.
들판 가득 쏟아지는 햇살이 오늘의 나를 감싸 안으며 오래 그늘졌던 마음의 들판을 서서히 말려주고 있다. 그 경계의 능선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그림자와 함께 악수 나누고 있다.
류송미 작가 프로필
1967년 10월 출생
1987년중국제1사범학교 졸업
1989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35년 동안 교사사업에 종사
학생글짓기지도
묵향문학회 한국지회 사무국장
한국아동청소년 문학협회 회원
시집 어느날의 토크쇼 출간
외 수필 가사 동시 동요 등 수십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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